성범죄 고소, 사건마다 대응이 달라야 하는 이유
성범죄로 경찰의 연락을 받거나 고소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조치부터 취해야 할까요.
“경찰 조사에서 뭐라고 말해야 할까.”
“상대방에게 연락해서 오해를 풀어야 하나.”
“합의를 먼저 해야 하나.”
“카카오톡이나 사진부터 제출해야 하나.”
물론 모두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실제 사건을 검토할 때는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부터 정확히 판단하는 것’입니다.
같은 강제추행 혐의라고 해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준강간 혐의라고 해서 모두 같은 자료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지, 문제가 된 행위가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졌는지, 그 전후에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떤 객관적인 자료가 남아 있는지에 따라 사건의 핵심 쟁점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성범죄 사건을 처음 상담할 때 단순히 죄명만 보고, 정형화된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지 않습니다.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다툴 것인지, 어떤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자료를 먼저 확보해야 하는지를 사건의 특성에 맞게 검토하고, 대응 방법을 찾습니다.
1. 같은 죄명이라고해서 대응이 같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술을 마신 뒤 이루어진 행위가 문제되어 준강간 또는 준강제추행으로 고소된 사건을 생각해보겠습니다.
형법에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거나 추행한 경우, 준강간 또는 준강제추행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에서는 단순히 “술을 마셨다,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확인해서는 대응 방향을 정할 수 없습니다.
누가 술자리를 제안했는지, 음주량, 숙박업소나 주거지까지 어떻게 이동했는지, 이동 과정에서 대화나 행동은 어떠했는지, 결제나 휴대전화 사용이 있었는지, 성관계 직전과 직후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제로 완전히 취했는지, 취하지 않았을 때 행동과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할 때 행동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도 준강간 사건에서 단순히 음주 여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당시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음주 후 기억이 나지 않는 이른바 블랙아웃과 실제 의식상실 상태를 구별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술을 마신 뒤 성관계가 있었던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무엇을 확인하고 다투어야 하는지는 사건마다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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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먼저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다툴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바로 진술 내용을 준비하기 전에 먼저 사건에 대한 기본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본 입장을 정한다는 것이 단순히 “전부 인정할 것인가, 전부 부인할 것인가”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관계 자체가 없었다고 다투는 사건인지, 성관계는 있었지만 강제성이 없었다고 다투는 사건인지, 신체접촉은 있었지만 그 접촉의 내용이나 성격이 고소, 신고된 내용과 다른 사건인지부터 구체적으로 구별해야 합니다.
반대로 객관적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행위까지 무리하게 부인하는 것도 좋은 대응은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사실관계마다 정확히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다툴 것인가”입니다.
이 판단이 정리되어야 경찰 조사에서 어떤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해야 하는지,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지, 합의를 검토해야 하는 사건인지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는 최초 피의자신문에서 이루어진 진술이 이후 수사와 재판에서 계속 문제될 가능성이 있고, 사건의 흐름과 방향을 좌지우지 할 수 있으니,
사실관계와 자료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억나는 대로 먼저 진술하고, 이후 객관자료가 확인될 때마다 설명을 바꾸는 방식은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3. 고소인의 진술만이 아니라 사건 전체의 맥락을 봐야 합니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당사자 두 사람만 있었던 공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고소인의 진술이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건이 고소인의 진술만으로 판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고소인의 진술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지, 혹은 그 진술에 반대되는 객관적 자료가 있지는 않은지 등의 사정을 살펴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건 전후의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는 두 사람의 관계와 당시 상황을 확인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통화내역과 통화녹음은 사건 직전 또는 직후 당사자의 행동과 대화 내용을 확인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CCTV는 두 사람의 이동 과정, 보행 상태, 신체접촉, 사건 직후 행동을 확인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택시·대리운전·카드 결제내역은 시간대와 이동경로를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함께 있었던 사람의 진술은 술자리에서의 상태나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료를 무작정 많이 제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소 내용에서 무엇이 쟁점인지 먼저 파악하고, 그 쟁점에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료를 선별해서, 그 자료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본인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제출한 자료의 다른 부분이 오히려 새로운 쟁점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4. 문제가 된 순간만 떼어놓고 보면 안 됩니다
성범죄 사건을 검토할 때 저희가 특히 중요하게 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건 전후의 흐름’입니다. 대부분 서로의 주장이 치열하게 대립되는 사건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사건 전후의 흐름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강간이나 준강간으로 고소된 사건이라면 성관계가 있었던 몇 분 또는 몇십 분만 떼어놓고 사건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두 사람이 사건 전부터 어떤 관계였는지, 당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문제된 장소까지 어떻게 이동했는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성관계나 신체접촉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함께 머물렀는지, 바로 자리를 떠났는지, 이후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도 확인하게 됩니다.
물론 연인 관계였다는 이유만으로 성관계에 대한 동의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건 이후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소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사실 하나를 결정적인 증거처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이전의 관계 → 문제된 행위 → 사건 직후 행동 → 이후의 연락’ 이라는 전체 흐름 속에서 각 자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특히 오래 알고 지낸 관계, 연인 관계, 직장 동료 관계처럼 두 사람 사이에 상당한 교류가 있었던 사건에서는 이러한 맥락을 정리하는 작업이 더욱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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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혹시 이미 경찰에서 진술했다면 기존 진술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미 경찰 조사를 한 차례 받은 뒤 찾아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때부터는 대응 방식이 조금 달라집니다.
새로운 설명을 준비하기 전에 기존 조사에서 본인이 무엇이라고 진술했는지부터 정확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첫 조사에서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 추측해서 답한 부분이 있는지, 질문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여 답한 부분은 없는지, 객관적인 자료와 다르게 이야기한 부분은 없는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추가 조사에서 아무 설명 없이 기존 진술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수사기관에서는 진술이 변경된 이유를 의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술을 정정하거나 보충해야 한다면 단순히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왜 처음에는 그렇게 진술했고, 이후 어떤 자료 또는 기억을 통해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는지까지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6.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결국 성범죄로 고소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해진 답변을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급하게 연락하여 해명을 시도하는 것도, 유리해 보이는 메시지만 골라 경찰에 바로 제출하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 사건을 시간순으로 다시 정리해봐야 합니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였는지.
문제가 된 날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다투어야 하는지.
상대방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그 주장을 확인할 객관적인 자료가 무엇인지.
나는 이미 경찰이나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이 기준들이 정리되어야 비로소 경찰조사, 증거제출, 합의 여부와 같은 다음 대응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에는 모든 사건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대응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같은 죄명이라도 관계와 상황이 다르고, 남아 있는 자료가 다르며, 이미 이루어진 진술도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사건을 처음 검토할 때부터 죄명보다 먼저 사건 자체를 봅니다. 실제로 죄명은 달라질 수 도 있습니다.
👉강간미수로 신고된 사건에서, 강제추행으로 죄명이 변경된 후 불기소 된 사례 확인
사건의 사실관계와 자료를 하나씩 확인하고, 이 사건에서는 무엇이 핵심 쟁점인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정해야 합니다.